참여적 동화(Participatory Assimilation)에서 털파햐 서로 손에 손을 맞잡고 다양성으로. ⓒ Pixabay
참여적 동화(Participatory Assimilation)에서 탈피해 서로 손에 손을 맞잡고 다양성으로. ⓒ Pixabay

【에이블뉴스 이원무 칼럼니스트】UN 장애인권리협약 제4조 3항과 제33조 3항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당사국은 이 협약을 이행하기 위한 입법과 정책의 개발 및 이행, 그리고 장애인과 관련된 문제에 관한 그 밖의 의사결정절차에서 장애인을 대표하는 단체를 통하여 장애아동을 포함한 장애인과 긴밀히 협의하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참가시킨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4조 3항)

시민단체, 특히 장애인과 이들을 대표하는 단체들은 감독 절차에 충분히 포함되고 참여한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33조 3항)

그런데 정신적 장애인 당사자들의 경우엔 이 조항이 사실 별로 와닿지 않는다. 최근 이와 관련해 네덜란드의 연구진이 ‘사이코시스’ 학술지에 ‘참여적 동화’란 개념을 발표해 눈길을 끈다. 그 개념에 따르면, 정책 등으로 인해 당사자들을 연구에 참여시키되, 기존 이론의 해결책에 통합되거나 이를 지지하는 경우에만 이들을 포함시키는 관행을 말하는 거다. 다시 말하면 말로는 당사자를 참여시킨다지만 실제로는 당사자를 배제하는 걸 의미한다는 거다.

그러면 현실에선 어떨까? 실제로 2022년 초에 세계 자폐계는 란셋 위원회의 보고서를 보고 많이 분개했다. ‘자폐 돌봄 및 의학연구의 미래에 대한 란셋 위원회’ 보고서인데 겉으로는 신경다양성을 존중하는 거 같이 보였지만, 실은 행동 치료를 강조하는 이른바 신경전형적, 다시 말해 비장애 중심적 관점의 보고서였음을 보게 되었다.

더군다나 IQ와 언어능력, 돌봄 필요도 등 자폐인 개인의 상태만을 본 격심한 자폐(Profound Autism)란 용어가 사용돼 자폐성 장애를 대상화하는 낙인감을 주었으며, 자폐인의 삶과 사회적·문화적 차별에 대한 현실은 별로 강조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장애의 의료적 관점을 충실히 따른 보고서였던 셈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알렉스 플랭크(Alex Plank)를 포함해 두 명의 자폐성 장애인과 이들의 부모가 그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었다는 거다. 나머지는 자폐성 장애에 관련된 교수들이나 의사, 종사자, 전문가 등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자폐성 장애인 두 명은 장애인의 권리 증진 관점을 갖고 보고서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기는커녕, 전문가들의 악세사리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말로만 당사자 참여지, 실제론 당사자를 배제하고 전문가 의견에 종속되게끔 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자폐 친화적인 듯하지만, 실제로는 자폐성 장애인 행동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지적 사기 형태의 Lancet 논문 중 일부. ⓒLancet
자폐 친화적인 듯하지만, 실제로는 자폐성 장애인 행동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지적 사기 형태의 Lancet 논문 중 일부. ⓒLancet

이런 추론이 가능하다. 보고서 작성 등과 관련한 연구에 자폐성 장애인을 소수 포함시키고 숫자 상으로 전문가들이 월등히 많고 이들은 장애의 의료적 관점을 고수하니, 그 관점으로 가도록 장애인 당사자를 압박했을 여지가 상당했을 수 있다. 아니면 자폐성 장애인이 사회에 만연한 장애의 의료적 개념을 자연스레 배우며, 장애를 고쳐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그럴 수도 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참여적 동화’의 한 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나라에선 매년 4월 2일이면 한국자폐인사랑협회와 보건복지부가 공동으로 ‘자폐인의 날’ 행사를 주최한다. ‘자폐인의 날’ 행사면, 자폐인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지, 자폐인과 관계자 등이 자폐인 권리에 대해 발표한다. 하지만 내용을 들어보면 자폐인의 권리와 이익 보호를 위한 후견인, 시설을 일반 가정과 비슷하게 만드는 등의 내용이다.

성년후견의 경우는 장애인의 의사와 선호, 의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대체의사결정제도로의 역할을 하고 있어 사실상 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뺏는다. 또한, 시설을 아무리 좋게 만들어도 시설수용의 본질인 사생활에 대한 통제, 감시 등의 시설화 요소를 배제하지 않는다면 ‘시설은 시설’이요, 본질적으로 좋은 시설은 없다. 시설수용은 국가폭력이 본질이니까.

결국엔 장애인의 권리 박탈과 국가폭력을 장애인 당사자의 입으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어째서 그게 가능했을까? 장애의 의료적 모델이 만연한 문화에서 가족이 그 모델에 영향을 많이 받아, 장애를 치료할 수 있다는 관점하에 장애가 있는 자녀에게 장애인차별을 심어줬을 여지가 크다. 그렇다면 그 자녀는 장애인차별을 자신의 내면에 내면화했을 여지가 크다. 합리적 편의를 시혜로 보는 것에도 그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이런 배경 속에 장애인은 형식적으로 참여하긴 하지만, 실은 권리 주체이긴커녕, ‘참여적 동화’의 객체로 전락한다.

올해 '자폐인의 날' 행사 당시 블루라이트 점등식 모습. ⓒ이원무
올해 '자폐인의 날' 행사 당시 블루라이트 점등식 모습. ⓒ이원무

심리사회적 장애와 관련해선 어떨까? 심리사회적 장애인 자살률이 높고, 격리·강박 등의 인권침해가 만연한 현실 속에서 과거 전 윤석열 정권에선 임기 내 정신건강 정책 대전환을 이루겠다며, 작년 여름에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런데 내용을 가만히 보면, 위원회 구성원 20명 가운데 절반이 정신과 의료진들이다. 당사자가 포함되긴 했지만 1명뿐이다.

더군다나 관련 정책 내용들이 오픈다이얼로그, 고조완화기법 등의 비강압적 방안이 포함된 지역사회 기반의 지원방안들보다는 격리와 치료 등에 초점을 맞춘 게 대부분이다. ‘조기치료’, ‘조기발견’ 등을 통해 사회적·문화적 차별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보기보단 심리사회적 장애인의 어려움을 개인의 문제로 환원해 왜곡시킨다.

대한민국에선 정신과 의사들이 정신건강 주권을 쥐고 있고, 이에 따라 심리사회적 장애인은 객체화된다. 심리사회적 장애인에 대한 편견, 혐오는 만연하다. 게다가 혁신위원회에 당사자 1명 밖에 없으니 설령 장애인이 인권적 개념을 가져도 의사들의 강력한 의료 카르텔 논리와 패러다임에 굴복하기 쉬운 구조다. 역시 당사자의 형식적 참여 속에 사실상 당사자를 배제하는 ‘참여적 동화’의 한 예라 볼 것이다.

현재도 대한민국은 치료와 격리, 강박 중심의 정책을 심리사회적 장애인들에게 실시한다. 그런 배경 속에 대한민국의 심리사회적 장애인은 격리, 강박은 인권침해며 이를 즉시 중단할 것은 물론, 지역사회 기반의 인권적 지원하라고 절규하며 미약하게나마 국가에 압박을 가하는 중이다.

최근엔 국감에서 자살을 막기 위해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하고, 사법입원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국회의원과 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사이에 논의되었다. 이를 현장에서 들은 한 심리사회적 장애인 당사자가 사법입원은 구시대적이고, 한국에선 가난한 사람들이 강제입원을 당하며, 당사자 주도 서비스 쥐꼬리에 의료중심 정신건강 예산은 5천억 원인 현실이라며, 당사자 의견을 반영해 방안을 마련할 것을 강력하게 호소했다. 심리사회적 장애인의 ‘참여적 동화’가 아닌 의미 있고 실질적인 정책·사회 참여가 있었다면 당사자가 호소할 정도까지 됐겠는가?

지난 10월 30일 국회 복지위 종합감사에서 김예지 의원이 눈물을 훔치던 당시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한결 사무국장이 쟝애의 의료적 모델을 페기하고 지역사회 기반의 지원이 필요함을 강하게 주장하며, 눈물로 호소하는 모습. ⓒ국회방송 NATV 유투브 동영상 캡처
지난 10월 30일 국회 복지위 종합감사에서 김예지 의원이 눈물을 훔치던 당시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한결 사무국장이 쟝애의 의료적 모델을 페기하고 지역사회 기반의 지원이 필요함을 강하게 주장하며, 눈물로 호소하는 모습. ⓒ국회방송 NATV 유투브 동영상 캡처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의 4조 3항에서 장애아동을 포함한 장애인과 긴밀하게 협의하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라는 내용, 33조 3항에서 장애인과 이들을 대표하는 단체들은 감독 절차에 충분히 포함하고 참여하라는 내용은 이렇게 ‘참여적 동화’와 같이 장애인의 형식적 참여가 아닌 의미 있고 실질적으로 장애인의 의견이 반영되고, 그럼으로써 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과 연결되는 것과 연관 있다.

그런데 위의 세 예에서 보는 것처럼 대한민국은 ‘참여적 동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다양성을 중시하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공부하거나 듣고, 이를 경험한 당사자들 수는 늘어나고 있음에도, ‘참여적 동화’로 인해 장애인차별을 내면화하고 있는 장애인 당사자도 적지 않다. 이렇게 된다면, 장애인들 간에 갈라치기가 되고, 서로 분열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장애를 혐오하는 문화가 만연하고, 대중들은 장애인차별에 대한 진실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을 혐오하는 자들과 최근엔 극우세력 지지자들까지 가세해 장애인차별을 내용으로 하는 가짜뉴스를 만드는 현상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2022년 4월 20일 당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회의원들의 장애비하발언에 대한 1심판결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며, 항소를 제기할 것임을 밝힌 모습.  ⓒ에이블뉴스DB
2022년 4월 20일 당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회의원들의 장애비하발언에 대한 1심판결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며, 항소를 제기할 것임을 밝힌 모습.  ⓒ에이블뉴스DB

장애인권리협약에선 다양성 존중을 전제로 한 ‘포괄(Inclusion)’을 핵심 가치로 여긴다. 장애인의 다양성과 교차성을 존중하고 수용하도록 사회 체계가 변화하고, 모두의 권리와 기회를 동등하게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하지만 동화는 신경전형적 사회 시스템에 적응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참여적 동화’도 마찬가지라, 이는 장애인권리협약의 핵심 가치와 거리가 멀다.

장애인권리협약에서 원하는 것은 장애인 당사자의 형식적인 참여가 아니다. 이 사회가 당사자의 권리와 삶의 질을 증진시키고 다양성을 존중하도록 장애인 당사자들의 충실하고 의미 있는 참여를 보장하며, 이들의 의견을 실질적으로 반영해 현실로 만드는 것이 협약에서 진정으로 추구하는 거다. 매년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각 당사국에 권고하는 최종견해에서도 단순하고 형식적이 아닌 의미 있고 실질적인 장애인 당사자의 참여를 강조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장애인식교육에 있어 장애인 당사자의 대면강의 기회 증대 및 인권적 모델에 기반한 교육 커리큘럼 내용으로 재구성, 사회 전반에 장애인 권리를 정기적이고 체계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의 전환, 국가 차원에서 장애인에 대한 교차차별 종식에 대한 구체적 전략을 도입하는 것 등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장애인 당사자들이 내는 목소리와 의견을 실질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문화적,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함을 말하고 싶다. 당사자 주도의 서비스 제도화와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감시체계 구축, 당사자의 법적 능력 확보를 위한 지원의사결정제도 도입, 주요정책기구 내의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인단체의 대표성 보장 조치 등을 구체적으로 마련해 시행하는 게 그 일환이 될 것이다.

당사자들이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 등을 제대로 배우며 알기 쉽게 알 수 있도록 장애인단체와 시민단체, 정부, 지자체 등이 합심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에 서로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인단체, 시민단체와의 강력한 연대와 단합도 중요함도 아울러 말하고 싶다. 그런 환경이 되어야 ‘참여적 동화’를 눈 씻고도 찾을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왜곡된 현상에 맞서 장애인 권리를 옹호할 수 있을 테니.

그래야 노년기에 시설수용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아니라 진정으로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걸 꿈꾸는 장애인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 시작은 ‘참여적 동화’가 아닌 장애인 관련 사안에 장애인과 장애인을 대표하는 단체의 의미 있고 실질적인 참여에 있음을 다시금 상기할 때이다. 진부한 표현 같으나, 우리 없인 우리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는 ‘Nothing about us, without us’라는 강력하고도 중요한 구호를 다시금 기억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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